위트니스 리 폭로지방 교회 · 자료와 배경

위트니스 리와 성경의 분명한 뜻: 시편, 잠언, 욥기, 야고보서

위트니스 리는 시편 1편이 "잘못된 관념으로 잘못 쓰였다"고 했고, 하나님의 법을 찬양하는 시편 19편의 구절들에서 다윗이 "'가인'이었다"고 했으며, 욥기에는 "하나님께 드린 기도나 찬양이 없다"고 했고, 야고보의 가르침은 "경건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글은 각 본문을 분명한 뜻대로 읽고, 그의 읽기와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나란히 놓는다.

삽화: 돌벽으로 나뉜 두 장면. 한쪽은 촛불이 켜진 어두운 방에서 긴 옷을 입은 교사가 화려한 두루마리를 들고 두건 쓴 몇몇 입문자에게 속삭인다. 다른 쪽은 환한 햇빛 아래 초대 그리스도인 회중이 한 장로가 편지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듣는다
이레네우스는 성경이 자신들과 맞서면 "돌아서서 바로 그 성경을 고발하며, 마치 성경이 옳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교사들을 묘사했다.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성경 전체, 곧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숨으로 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모든 말씀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아니다" (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제14편 ↗).

그는 이 두 번째 문장을 창세기 3장의 뱀의 말에만 적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본문들에도 적용했다. 시편 1편은 "잘못된 관념, 곧 인간적인 관념으로 잘못 쓰였다"(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 하나님의 법을 찬양하는 시편 19편의 구절들에서 다윗은 "'가인'이었다." 욥기는 "인간적인 견해들의 기록"이며 "하나님께 드린 기도나 찬양이 없다"(욥기 라이프 스타디 제36편 ↗). 야고보의 가르침은 "경건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제14편 ↗). 잠언은 "하나님에게서 직접 온 말씀은 아니다"(잠언 라이프 스타디 제6편 ↗). 그리고 온유와 인내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완전히 틀렸다"(성경의 신적 계시의 높은 봉우리에 따라 사는 생활의 실제적인 길, 제2장 ↗).

그가 어느 것이 어느 쪽인지 가른 기준은 그 자신의 체계에서 나왔다. "하나님의 경륜"에 맞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율법을 높이는" 것은 "거룩한 기록자들의 인간적인 관념"이다(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 베드로는 정반대로 말했다. "예언이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한 것입니다"(베드로후서 1:21).

이 글은 원래 위트니스 리와 영지주의자들이라는 글의 일부였다. 주후 180년경 이레네우스는 성경이 자기들과 반대될 때 영지주의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묘사했다(아래 참조). 리는 그들의 우주론 같은 것은 전혀 가르치지 않았다. 닮은 점은 성경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본문은 성경 안에 그대로 남아 있지만, 체계에 맞는 부분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래 각 본문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으로 리의 읽기를, 그리고 성경의 나머지 부분이 하는 말을 놓았다. 모든 인용에는 출처가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성경으로 반박을 당하면, 돌아서서 바로 그 성경을 고발하며, 마치 성경이 옳지 않고 권위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성경은 모호하며 전통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진리를 끌어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When, however, they are confuted from the Scriptures, they turn round and accuse these same Scriptures, as if they were not correct, nor of authority, and [assert] that they are ambiguous, and that the truth cannot be extracted from them by those who are ignorant of tradition.”

리옹의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제3권 2장 ↗이레네우스는 이단들이 성경으로 반박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 묘사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

삽화: 예수님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꿇은 채 토기 물병으로 베드로의 발에 물을 부어 놋대야에 받으시고, 다른 제자들은 등불이 켜진 식탁 둘레에서 지켜본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도 나처럼 해야 한다는 본을 보이려는 것이다"(요한복음 13:15).

리는 젊은 시절 "예수님은 온유하고 인내하셨으므로, 우리도 온유와 인내로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배웠다. 그의 판정은 이렇다. "겉보기에는 이 가르침이 옳지만, 본질적으로는 완전히 틀렸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인간 생명이 아니라 신성한 생명으로" 사는 것이며, 하나님이 "그분의 모든 신성한 속성이 인간의 미덕이 되는" 가운데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겉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거나 인간의 윤리 안에서 온유하고 인내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성경의 신적 계시의 높은 봉우리에 따라 사는 생활의 실제적인 길, 제2장 ↗)

사도들은 결코 안의 생명과 밖의 본을 서로 맞세우지 않았다. 예수님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너희도 나처럼 해야 한다는 본을 보이려는 것이다"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3:15).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쓰고, 그 발자취를 설명했다. 그분은 죄를 짓지 않으셨고,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고, 위협하지 않으셨다(베드로전서 2:21–23). 바울은 둘을 함께 붙든다.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으로서…"(빌립보서 2:12–13).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고(갈라디아서 5:22–23), 몇 절 뒤에는 명령이 된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이…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그를 바로잡아 주십시오"(갈라디아서 6:1). 성령께서 맺으시는 것을 신자들은 행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시편 1편

사람들로 붐비는 넓은 길이 웅장한 문을 지나 어두운 협곡으로 내려가고, 그 옆으로 좁은 바윗길이 햇빛 비치는 작은 문으로 올라가며 몇몇 사람만 그 길을 걷는 모습을 그린 삽화
"의로운 사람들의 길은 주께서 지켜 주시지만 악한 사람들의 길은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시편 1:6).

리는 시편 기록자들이 "두 가지 관념, 곧 인간적인 관념과 신성한 관념을 말했다"고 가르치며, 시편 1편을 앞의 것에 넣었다. "시편 1편은 좋지만, 잘못된 관념으로 쓰였다… 우리는 시편 1편을 높이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잘못된 관념, 곧 인간적인 관념으로 잘못 쓰였다." 그는 기록자들이 "그들의 인간적인 관념에 따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틀렸으며", "그들이 틀리게 말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했다. (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

그러나 그가 든 예는 오히려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리는 악인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괴로워한 시편 73편을 인용하지만, 그 시편은 성소에서 시편 1편을 확증하며 끝난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마지막 운명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께서는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어 넘어져 망하게 하십니다"(73:17–18). 바울은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라고 했고(디모데후서 3:16), 예수님은 시편을 인용하시며 "성경 말씀은 결코 깰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0:35). 그리고 신약은 시편 1편을 거의 한 줄 한 줄 되풀이한다.

신약 속의 시편 1편
시편 1편신약
1절: 악한 자들의 꾀를 따르지 않음"나쁜 친구들이 좋은 품성을 망친다"고린도전서 15:33
2절: 주님의 가르침을 사랑함"그 법이 명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야고보서 1:25
3절: 열매 맺는 나무"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내가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요한복음 15:5
3절: 하는 일은 무엇이든 잘 됨"경건함에 이르기 위한 훈련은 모든 면에서 가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생명뿐 아니라 앞으로 올 세상에서의 생명도 약속해 준다"디모데전서 4:8
4절: 바람에 날리는 겨"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복음 3:12
5절: 심판"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재판 자리 앞에 서야 합니다"고린도후서 5:10
6절: 두 길"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은 넓고…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험해서"마태복음 7:13–14

예레미야는 시편 1편과 같은 그림을 믿음에 쓴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는 물가에 심겨진 나무와 같아서"(예레미야 17:7–8). 야고보서 1:25는 거의 시편 1편 2–3절 그대로다. 하나님의 완전한 법을 살피고 "그 법이 명하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면, 복을 받을 것입니다." 리가 독자들이 "천연적인 이해에 따라서" 읽는다고 한 구절이 바로 이것이다(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제13편 ↗).

시편 세 편 더

삽화: 해 질 녘 젊은 다윗이 바위 언덕에 앉아 있다. 곁에는 수금이 있고, 무릎 위의 펼친 두루마리를 작은 등불이 비춘다. 양들이 곁에서 쉬고, 언덕 위 하늘에 첫 별들이 떠오른다
"주의 법은 완전하여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시편 19:7).

시편 19편은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한다. "주의 법은 완전하여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그것들을 지켜 큰 상을 받습니다"(19:7, 1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앞부분은 리가 다윗의 공으로 인정하지만, 이 부분은 아니다. "1–6절에서 그는 '아벨'이었고, 7–11절에서 그는 '가인'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 큰 상이 있다는 이 관념이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신성한 관념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9편 ↗) 바울은 "율법 그 자체는 거룩합니다. 그리고 그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합니다"라고 말한다(로마서 7:12).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가 영생을 얻고 싶으면 계명들을 지켜라"라고 하셨다(마태복음 19:17).

시편 15편은 "주님 당신의 장막에 살 수 있는 사람 누구입니까?"라고 묻고 "오직 깨끗하게 살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으로부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훌륭한 시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선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의 선에 있는 시편이다." (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7편 ↗) 예수님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뵐 것이다"(마태복음 5:8),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가르침에 순종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그를 사랑하실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나는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4:23). 요한은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의롭습니다"라고 말한다(요한일서 3:7).

시편 34편은 "가엾은 이 사람이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들으시고 모든 어려움에서 구해 주셨다"라고 말한다(34:6). 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편에서 그는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렸지만, 실제로는 미친 척하여 스스로를 구했다. 위장하는 것은 일종의 거짓이다." (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6편 ↗) 베드로는 이 시편을 신자들에게 교훈으로 인용하고(베드로전서 3:10–12),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이 시편을 이루셨다고 말한다.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요한복음 19:36).

욥기

삽화: 새벽녘 욥이 찢어진 옷을 입고 무너진 집터 가운데 무릎을 꿇고, 얼굴을 들고 두 손을 펴서 경배한다. 슬퍼하는 종들이 그를 지켜본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고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욥기 1:21).

리는 "윤리적으로 말하면 욥은 매우 좋았다"고 인정하고,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욥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하기까지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자신의 목표보다 낮게 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긍정적인 일에서조차 실제로 긍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로 이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가장 긍정적인 것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책 전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욥기는… 인간적인 관념에 근거한 인간적인 견해들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하나님께 드린 기도나 찬양이 없다… 욥과 그의 세 친구와 엘리후가 하나님께 대해 어떤 갈망을 가졌다는 암시도 없다." (욥기 라이프 스타디 제2편 ↗, 제36편 ↗)

책을 펴 보라. 욥은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라고 말했다(1:20–21). 그는 "나는 믿는다. 나를 변호해줄 분이 살아계심을… 나는 하나님을 뵙고 말리라"(19:25–26), "그분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했다(23:3).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해 기도 드리고 난 뒤 주께서 그의 재산들을 되돌려주셨다"(42:10). 같은 책은 또 "주를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요, 악한 일을 멀리하는 것 그것이 곧 깨달음이다"라고 말한다(28:28). 리가 "충분하지 않다"고 한 바로 그 두 가지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에게 "너희가 나의 종 욥과는 달리 나에 대해 옳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신다(42:7). 사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자체를 칭찬했다. "당신을 두려워하고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 주신다"(사도행전 10:35). 하나님께서도 욥을 노아와 다니엘과 함께 그들의 "의로움"으로 언급하신다(에스겔 14:14).

야고보서

삽화: 1세기 석공들이 거대한 모퉁잇돌 기초 위에 돌벽을 쌓고 있다. 우두머리 건축가가 다림줄로 줄을 확인하고, 일꾼들은 나무 기중기로 돌덩이를 들어 올린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단단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마태복음 7:24).

리는 독자들이 "우리가 율법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야고보가 옳다"고 말할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그것은 영의 비추심에 따라서가 아니라 천연적인 이해에 따라서 읽는 것이다." 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숨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고는, 야고보서를 창세기 3장의 뱀의 말, 마태복음 16장의 베드로의 말과 같은 부류에 넣는다. 하나님이 기록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이다(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제14편 ↗). 이것은 양쪽을 다 가지려는 것이다.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숨으로 된 것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자신을 세상에 물들지 않게 지키고… '주께서 원하시면'이라고 말하는" 야고보의 가르침이 "경건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라고 썼다. 또 야고보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다"고 했다. (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제13편 ↗, 제14편 ↗, 제5편 ↗)

뱀과 베드로의 말은 성경 안에서 바로잡힌다. 야고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말씀을 실천하라"는 것은 야고보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단단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마태복음 7:24).

전체 비교 읽기: 위트니스 리, 야고보, 바울 →

전도서

삽화: 왕의 옷을 입은 나이 든 교사가 나무 아래에서 젊은 제자들에게 두루마리를 읽어 주고, 긴 막대기를 든 목자가 양 떼를 길로 이끈다. 멀리 예루살렘의 언덕들이 보인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짐승을 모는 날카로운 채찍 같고… 그것은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전도서 12:11).

리는 솔로몬이 자신의 실험에서 얻은 결론들이 "비록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만, 하나님에게서 온 신성한 계시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고 썼다. 그는 이 책의 결론적인 말들은 "잠언, 곧 지혜의 말로 여길 수 있다"고 인정했다. (전도서 라이프 스타디 제2편 ↗)

전도서는 지혜로운 사람의 가르침이 "목자 되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12:11), 바울은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라고 말한다(디모데후서 3:16).

잠언

삽화: 햇살이 비치는 돌 뜰에서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한 손은 어린 아들의 어깨에, 다른 손에는 펼친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어머니가 문간에서 지켜본다
"아버지가 귀여워하는 아들을 꾸짖듯이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꾸짖으시기 때문이다"(잠언 3:12).

리는 잠언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에게서 직접 온 말씀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많은 지혜로운 사람들, 특히 솔로몬의 말이다"라고 썼다. 그는 이 말들이 "성경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지만, "우리가 천연적인 사람으로 그것을 접촉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 관한 첫 메시지에서 그는 잠언이 윤리적인 사람이 "자신을 수양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영 안에서 사는 사람이 되도록 돕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성취를 위해"라고 했다. (잠언 라이프 스타디 제6편 ↗, 제1편 ↗)

신약은 잠언을 성경으로 인용한다. 야고보는 잠언 3:34를 인용하며 "그래서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은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신다'"라고 쓴다(야고보서 4:6). 히브리서는 위의 잠언 말씀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여기시고 하신… 격려의 말씀"이라고 부른다(히브리서 12:5–6). 바울의 "각 사람에게 그가 한 일에 따라 그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로마서 2:6)는 시편 62:12와 잠언 24:12를 인용한 것이다. 잠언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흠 없이 완전하며"라고 말한다(30:5).

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정했는가

매번 리는 자신의 기준을 밝히는데, 그 기준은 그 자신의 체계, 곧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사람,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에서 나온다. 가장 분명한 예는 시편에 있다. 시편 1편과 2편은 같은 저자가 썼지만, 리는 이렇게 말한다. "첫 번째 시편은 다윗이 직접 말한 인간적인 관념에 따라 말해졌다. 두 번째 시편도 다윗이 말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이어서 "시편 3편부터 7편까지는 다시 다윗의 어조이지만, 시편 8편에서는 하나님의 어조가 왔다." 그의 이유는 이렇다. "신성한 관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영원한 경륜에 관한 것"이고, "거룩한 기록자들의 인간적인 관념은 율법을 그들의 중심 강조점으로 높인다." (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

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본문과 아니라고 한 본문
성경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
시편 2편: "그 아드님께 입을 맞추어라…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 "그리스도께 피하는 문제"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시편 8편: "오, 주님 우리 주님 당신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시편 8편에서는 하나님의 어조가 왔다"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인간적이라고 한 것
시편 1편: "주님의 가르침을 사랑하며""잘못된 관념, 곧 인간적인 관념으로 잘못 쓰였다", 인간적인 관념은 "율법을 높인다"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시편 3–7편"다시 다윗의 어조"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시편 15편: "깨끗하게 살고 의로운 일을 하며""선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의 선에 있는 시편"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7편
시편 19:7: "주의 법은 완전하여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7–11절에서 그는 '가인'이었다", 계명을 지켜 큰 상을 받는다는 관념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신성한 관념에 따른 것이 아니다"시편 라이프 스타디, 제9편
야고보서 1:22: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십시오""경건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야고보는 "하나님의 경륜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다"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제5편과 제14편
욥기 1:8: "성실하고 의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실제로 긍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장 긍정적인 것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욥기 라이프 스타디, 제2편
마태복음 11:29: "내게서 배워라. 나는 마음이 부드럽고 겸손하니""겉보기에는… 옳지만, 본질적으로는… 완전히 틀렸다", "당신은 하나님-사람이 되어야 한다"High Peak, 제2장
전도서: 솔로몬의 결론"하나님에게서 온 신성한 계시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록자가 연구한 결론"전도서 라이프 스타디, 제2편
잠언"하나님에게서 직접 온 말씀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의 성취를 위해" 사는 데 돕지 못한다잠언 라이프 스타디, 제1편과 제6편

같은 저자, 같은 책이다. 어떤 시편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인간적인 관념"인지는 그것이 체계에 맞는지에 달려 있다. 시편에서는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고, 율법을 높이는 것은, 그 시편이 하나님 자신의 법을 찬양할 때조차도, 인간적인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같은 기준이 말씀을 실천하는 것,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온유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밀어낸다. 성경이 체계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가 성경을 시험하는 것이다.

리의 라이프 스타디와 "문자"

리는 성경을 "문자의 길로" 읽는 것과 "영과 생명의 길로" 읽는 것을 대조했다. 그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영과 생명의 신약을 문자의 구약으로 만들었다…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약을 문자의 잠언과 계율과 권면과 지시로 만들었다. 우리의 라이프 스타디는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 전체를 영과 생명의 책들이 되게 하였다"고 말했다. (잠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

그는 라이프 스타디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지는 않으며, 그리스도께 나아오지 않고도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옳다(요한복음 5:39–40). 그러나 바울이 "문자로 쓰인 것은 죽음을 가져오지만, 성령은 생명을 가져다줍니다"라고 한 것은(고린도후서 3:6), "율법을 돌 판에 문자로 새겨서" 주신 옛 계약에 관한 말이지(3:7), 신약의 명령을 분명한 뜻대로 읽는 것에 관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리는 "문자"를 바로 이런 "계율과 권면과 지시"에(잠언 라이프 스타디 제1편 ↗), "말씀을 실천하라"는 명령에까지 적용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이 성령과 생명을 준다"고 하셨다(요한복음 6:63).

성경은 분명하게 이해될 수 있다

삽화: 1세기 회당에서 유대인과 그리스인들이 긴 탁자 위에 펼친 두루마리를 들여다보며 본문을 가리키고 열띠게 이야기하고, 사도 바울은 그들 가운데 앉아 듣고 있다
베레아 사람들은 "바울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사도행전 17:11).

사도들은 이해되도록 썼다. 바울은 "내가 여러분에게 쓰는 편지도 솔직하게 쓰는 것이어서, 여러분이 읽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고린도후서 1:13), "그 글을 읽으면, 여러분은 내가 그리스도에 관한 이 은밀한 계획을 꿰뚫어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에베소서 3:4)라고 말한다.

베레아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말까지도 확인했다. 그들은 "바울의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였다"(사도행전 17:11). 이레네우스는 그렇게 확인하는 것이 왜 안전한지 설명했다. "오류는 그럴듯하지만… 위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리는 위장이 없으며,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에게도 맡겨졌다"(이단 반박, 제3권 제15장 ↗).

베드로는 이것을 경고했다. 바울의 편지들에는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려운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다른 성경을 비뚤어지게 해석하듯이 그 편지의 뜻도 비뚤어지게 해석하여 마침내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베드로후서 3:16).

“오류는 그럴듯하고 진리와 닮았지만 위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리는 위장이 없으며,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에게도 맡겨졌다.”

“For error is plausible, and bears a resemblance to the truth, but requires to be disguised; while truth is without disguise, and therefore has been entrusted to children.”

리옹의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제3권 15장 ↗이레네우스는 평범한 신자들이 왜 성경으로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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